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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RSS 게시판 2.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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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This is RSS Board.]]></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item>
								<title>청평사</title>
								<link>/bbs/history/1260/364102/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4 23:18:42.0</pubDate>
								
									
										<author>이창민</author>
									
									
								
								
								<description>
								<![CDATA[
								청평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新興寺)의 말사(末寺)이며 춘천을 대표하는 사찰입니다. 소양호 한쪽에 우뚝 솟아 있는 오봉산(과거 청평산ㆍ경운산) 기슭에 자리했으며 고려 광종 24년(973년)에 창건되었으며 세 번의 중창과 조선 명종 때 보우대사가 중건하여 대사찰이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때 거의 소실된 것을 1970년대에 전각들을 다시 짓고 회전문을 보수하고 범종각과 요사채를 앉혔습니다. 천년이 넘은 고려선원(高麗禪園)의 정취와 흔적을 느낄 수 있으며 청평사를 포함한 주변 일대가 명승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가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낙산사</title>
								<link>/bbs/history/1260/364090/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4 22:52:44.0</pubDate>
								
									
										<author>장예주</author>
									
									
								
								
								<description>
								<![CDATA[
								낙산사는 강원도 양양에 위치한 대표적인 불교 사찰로, 의상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동해를 바라보는 위치에 자리해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아름다움이 뛰어나며, 해수관음상과 홍련암 등 상징적인 문화유산을 함께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낙산사는 단순한 사찰을 넘어 종교적 의미와 역사적 가치, 그리고 경관적 가치를 모두 갖춘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낙산사를 조사하면서 단순히 오래된 건축물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신앙과 삶이 축적된 공간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바다와 맞닿아 있는 입지 덕분에 자연과 인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낙산사</title>
								<link>/bbs/history/1260/364089/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4 18:52:47.0</pubDate>
								
									
										<author>박재영</author>
									
									
								
								
								<description>
								<![CDATA[
								낙산사는 강원도 양양에 있는 사찰로, 신라 시대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하였다. 3대 관음 성지 중 하나로 꼽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푸른 동해의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이유는, 의상대사가 기도를 올리던 중 바닷가 동굴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고, 이 장소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낙산사는 창건된 후 여러 차례의 화재로 소실되고 중건되기를 반복했다. 2005년 대형 산불로 인해 낙산사 동종 및 주요 전각이 불길에 집어삼켜졌으나, 조선 시기 화가 김홍도의  낙산사도 를 바탕으로 복원하면서, 낙산사가 가장 화려했던 조선 시기를 바탕으로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노동당사</title>
								<link>/bbs/history/1260/364087/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4 17:13:43.0</pubDate>
								
									
										<author>홍지효</author>
									
									
								
								
								<description>
								<![CDATA[
								 '노동당사'는 강원 철원군 철원읍 금강산로에 위치해 있는 문화유산으로, 1946년 초에 북한 정권하에서 지역주민들의 강제 노력동원과 모급에 의해 완공된 지상 3층에 연건평 580평 규모의 건축물로 신축된 건물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건축적 특징과 시대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이 건축물은 언덕을 이용한 기단의 설정과 대칭적 평면, 비례가 정돈된 입면의 사용으로 공산당사로서의 당시 권위가 어땠는지 느낄 수 있다. 철근 콘크리트 사용과 화강석, 벽돌 및 목재의 혼용을 살펴볼 수 있어 당시의 건축일면을 엿볼 수 있다. 이 건물의 일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백담사</title>
								<link>/bbs/history/1260/364086/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4 16:30:31.0</pubDate>
								
									
										<author>손상민</author>
									
									
								
								
								<description>
								<![CDATA[
								백담사는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깊은 계곡에 자리 잡은 사찰로, 맑은 백담계곡 물과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자연 속에 완전히 녹아든 듯한 분위기를 지닌다. 백담이라는 이름은 절에 이르기까지 계곡을 따라 약 백 개의 웅덩이를 지난다는 데에서 유래했으며 그만큼 물과 바위가 어우러진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백담사는 신라 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곳으로,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차례 중건을 거치며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현대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수행과 사색을 위해 찾았던 장소로 알려져 있어 역사적 정신적 의미가 함께 깃들어 있다.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낙산사</title>
								<link>/bbs/history/1260/364085/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4 14:42:00.0</pubDate>
								
									
										<author>함효주</author>
									
									
								
								
								<description>
								<![CDATA[
								낙산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을 대표하는 관광명소이자 역사적 가치가 큰 명승지다. 신라 문무왕 11년(671)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강화 보문사,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한국 3대 관음성지로 꼽힌다.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풍광이 아름다운 사찰은 관동팔경(강원특별자치도 영동의 여덟 군데 명승지) 중 한 곳으로, 예로부터 수많은 고전과 시문에 그 아름다움이 전해지고 있다. 낙산사는 여러 번 중건과 복원을 거친 역사적 사찰로 여러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16m 높이의 해수관음상, 해안 절벽 위에 지은 정자이자 동해안 일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백마고지</title>
								<link>/bbs/history/1260/364084/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4 14:14:00.0</pubDate>
								
									
									
										<author>홍진오</author>
									
								
								
								<description>
								<![CDATA[
								백마고지 전투는 1952년 한국전쟁 당시 강원도 철원 일대에서 벌어진 고지 쟁탈전입니다. 국군 제9사단과 중공군이 약 열흘 동안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며 고지의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고, 포격으로 인해 산의 형태가 변해  백마고지 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전투는 전략적 요충지를 둘러싼 대표적인 고지전으로, 많은 희생 끝에 국군이 고지를 방어하였습니다.이번 답사를 통해 전투의 치열함과 병사들의 희생을 직접 느낄 수 있었고, 평화의 소중함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낙산사</title>
								<link>/bbs/history/1260/364083/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4 13:41:50.0</pubDate>
								
									
										<author>함형우</author>
									
									
								
								
								<description>
								<![CDATA[
								  낙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해변에 위치한 특이한 구조를 갖춘 사찰로,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도량 중의 하나이다. 낙산은 범어 보타락가의 준말로서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르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671년(문무왕 11)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의상은 기도를 하다가 관세음보살을 만나 보살이 가르쳐 준 곳에 법당을 지은 후 낙산사라 하였다. 해안 절벽 바로 옆에 사찰이 있어 동해 바다가 보이는 풍경과 파도 소리와 시원한 바람이 어우러져 인상깊은 답사 장소였고, 왜 이곳이 예로부터 관동팔경 중 하나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노동당사</title>
								<link>/bbs/history/1260/364082/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4 13:16:56.0</pubDate>
								
									
										<author>서지원</author>
									
									
								
								
								<description>
								<![CDATA[
								철원 노동당사는 1946년 북한 노동당의 지휘 본부로 세워져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의 격전지인 건축물이다. 철원은 당시 군사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이 노동당사에서는 북한 군의 전략 계획과 행정 업무가 이루어졌다.또한 한국전쟁 당시 피해를 입어 외부 벽체 계단실만 남고 내부는 폐허로 남아있다. 지금은 역사 유적지로 보존되어 전쟁의 상흔을 기억하고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특히 건물 내부와 주변 전시를 통해 6 25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또한 2002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낙산사</title>
								<link>/bbs/history/1260/364080/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4 00:20:11.0</pubDate>
								
									
										<author>전혜성</author>
									
									
								
								
								<description>
								<![CDATA[
								낙산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 오봉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671년(문무왕 11)에 창건한 사찰입니다. 오봉산은 낙산이라고도 합니다. 낙산은 범어 보타락가의 준말로서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르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낙산사는 연간 11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주요 관광지로 현재 사적 제495호에 등재되어 있고 낙산사 칠층석탑 (보물 제499호),낙산사 건칠관음보살좌상 (보물 제1362호),양양 낙산사 해수관음공중사리탑 (보물 제1723호) 같은 다양한 유물들이 있습니다.  특히 무엇보다 해안의 단애 위에
								]]>
								</description>
							</item>
						
							<item>
								<title>청평사</title>
								<link>/bbs/history/1260/364079/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3 23:21:36.0</pubDate>
								
									
										<author>정재희</author>
									
									
								
								
								<description>
								<![CDATA[
								청평사는 973년(고려 광종 24년)에 창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불교가 국가적으로 융성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사찰도 왕실과 귀족의 후원을 받으며 발전했다. 특히 고려 시대에는 수행과 기도의 공간 뿐 아니라, 학문과 문화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청평사에는 유명한 설화가 있는데 바로 공주전설이다. 고려의 한 공주가 저주를 받아 괴물이 되었지만, 이곳에서 수행을 통해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이다.이 전설은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불교의 수행과 깨달음, 인간의 구원과 변화를 나타낸다. 산을 올라가서 청평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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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백마고지</title>
								<link>/bbs/history/1260/364078/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3 23:13:19.0</pubDate>
								
									
										<author>김가윤</author>
									
									
								
								
								<description>
								<![CDATA[
								 백마고지 전적지는 조국을 위해 싸우신 선열들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백마고지 전투의 승리와 교훈을 오래도록 전하고자 1990년 5월 3일 강원도 철원에 세워진 곳이다. 백마고지 전투는 6 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군 제9보병사단이 중공군 제38군 소속 3개 사단을 격파한 전투로, 10일 동안 고지의 주인이 무려 12번이나 바뀌었을 정도로 치열한 혈전이 벌어졌다. 전투로 인해 산의 능선이 처참하게 훼손된 모습이 마치 흰 말이 누워 있는 형상과 비슷하다고 하여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낙산사</title>
								<link>/bbs/history/1260/364077/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3 21:13:43.0</pubDate>
								
									
										<author>이세빈</author>
									
									
								
								
								<description>
								<![CDATA[
								낙산사는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에 위치한 천년 고찰로 671년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사찰입니다. 동해 바다를 배경으로 자리한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유명하며 특히 일출 명소로 손꼽혀 매년 수많은 관광객과 불자들이 찾아옵니다. 저는 특히 절에서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산속 깊이 있는 여느 사찰과 달리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느끼는 고요함이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사찰 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7층 석탑과 홍예문, 그리고 16미터 높이의 해수관음상이 웅장하게 서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도피안사 </title>
								<link>/bbs/history/1260/364058/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3 13:43:00.0</pubDate>
								
									
										<author>박찬조</author>
									
									
								
								
								<description>
								<![CDATA[
								  도피안사는 신라 경문왕 5년(865)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입니다. 도피안사의 의미는 번뇌를 넘어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에 도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피안사는 도선이 철조비로좌나불상을 제작하여 운반하던 도중 사라졌으며 실종된 불상이 현재의 도피안사 자리에 편안히 앉아 있어 지금 현재의 자리에 도피안사를 창건하였다. 이러한 도피안사는 6.25 전쟁 당시에 폐허가 되었으며 이를 15사단 장병들이 재건하였다. 도피안사 안에 있는 철조비로좌나불상은 당시에 유행하던 철조불상이다. 이 철조비로좌나불상의 특이한 점이라면 불상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도피안사</title>
								<link>/bbs/history/1260/364057/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3 13:25:17.0</pubDate>
								
									
										<author>윤지현</author>
									
									
								
								
								<description>
								<![CDATA[
								 도피안사는 신라 경문왕 5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번뇌를 넘어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에 도달한다'는 이름처럼 깊은 종교적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다. 도선은 현재 도피안사에 있는 철조비로자나불상을 제조 후 철원 안양사에 봉안하기 위해 운반하던 중 불상이 갑자기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없어진 불상을 찾아보니,  지금의 도피안사가 위치한 자리에 편안하기 앉아 있었고, 도선은 이를 본 후 그 자리에 도피안사를 창건했다는 일화가 있다. 사진은 철조비로자나불좌상으로 경문왕 5년에 제작되었으며, 제작 연대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중요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백마고지 전적지</title>
								<link>/bbs/history/1260/364055/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3 12:10:45.0</pubDate>
								
									
										<author>김종연</author>
									
									
								
								
								<description>
								<![CDATA[
								백마고지 전적지는 6.25전쟁 당시 1952년 10월 6일부터 10월 15일 까지 한국군과 유엔군이 중화인민공화국 군과 백마고지 에서 싸웠던 백마고지 전투의 현장이다 백마고지 전투는 강원도 철원군 에서 벌어졌던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약 27만발의 포탄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로 산이 마치 백마가 누워 있는것 같다고 하여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노동당사</title>
								<link>/bbs/history/1260/364048/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3 08:13:15.0</pubDate>
								
									
										<author>김진아</author>
									
									
								
								
								<description>
								<![CDATA[
								강원도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노동당사는 1946년에 완공된 3층 건물이다. 6 25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의 노동당사로 이용되었다. 현재 이 건물은 6 25전쟁 때 큰 피해를 입어 건물 전체가 검게 그을리고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게 나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6 25전쟁과 한국의 분단현실을 떠올리게 해서 유명가수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나 유명 음악회의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현재 철원 노동당사는 철원군이 안보관광코스로 운영하고 있으며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2001년 2월 근대문화유산에 등록되면서 정부 차원의 보호를 받고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백마고지 전적지</title>
								<link>/bbs/history/1260/364045/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2 16:34:22.0</pubDate>
								
									
										<author>이서준</author>
									
									
								
								
								<description>
								<![CDATA[
								백마고지 전적지는 강원도 철원에 있는 곳으로 한국전쟁 당시인 1952년 10월에 일어난 고지전이다. 백마고지는 남동쪽으로 펼쳐진 철원평야를 훤히 감제할 수 있었으며 중공군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철원 일대의 국군과 유엔군 기지와 보급선을 전부 위협할 수 있어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백마고지는 중부 전선의 전략적 거점이었기 때문에 1952년 10월 6일 중공군이 대공세를 시작하고 약 24번정도 주인이 바뀌었으며 10일 동안 약 30만발의 포탄이 떨어지면서  고지의 본래모습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렇게 형성된 지형의 모습이 
								]]>
								</description>
							</item>
						
							<item>
								<title>양양 낙산사</title>
								<link>/bbs/history/1260/364040/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2 15:36:45.0</pubDate>
								
									
										<author>남지완</author>
									
									
								
								
								<description>
								<![CDATA[
								강원도 양양군 오봉산에 위치한 낙산사는 신라 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로, 관세음보살이 머무는 곳이라는 '관음도량'으로 널리 알려진 한국의 대표적인 관음 성지입니다. 이곳은 동해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절경을 자랑하며, 특히 낙산사의 상징인 높이 16m의 거대한 '해수관음상'은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장엄하고도 평온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경내에 들어서면 보물로 지정된 '낙산사 칠층석탑'을 비롯해 원통보전, 의상대, 홍련암 등 유서 깊은 문화재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역사적 깊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노동당사</title>
								<link>/bbs/history/1260/364038/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2 14:55:06.0</pubDate>
								
									
										<author>정재욱</author>
									
									
								
								
								<description>
								<![CDATA[
								노동당사는 1946년 북한 노동당이 철원과 그 인근 지역을 관장하기 위해 지은건물이며 지역주민의 노동력과 자금 및 인근마을의 쌀 200가마와 장비를 빼았아 강제 동원하여 지었으며 특이하게 건물내부를 지을때만큼은 비밀유지를 위해 노동당원만을 투입하였다. 주민 통제 및 사상 운동을 억압하는 구실을 하였다 또한 이곳은 수탈의 중심지에 사상운동가를 가두고 고문및 학살에도 쓰였다 실제로 노동당사 건물 방공호에 많은 인골과 실탄및 철삿줄이 발견돼어 학살및 고문을 하였다는 증거로 사용된다. 노동 당사는 철근 구조에 벽돌과 시멘트로 벽을 쌓아 매
								]]>
								</description>
							</item>
						
							<item>
								<title>양양 낙산사 일원</title>
								<link>/bbs/history/1260/364037/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2 14:40:49.0</pubDate>
								
									
										<author>이상원</author>
									
									
								
								
								<description>
								<![CDATA[
								〈낙산사 홍련암〉1. 답사지 장소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 및 기본적인 소개 낙산사는 강원도 양양에 있는 사찰로, 671년(문무왕 11) 의상대사에 의해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하였다.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도량(관음성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낙산이라는 명칭은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물고 있다고 전해지는 해안고절처(海岸孤絶處)의 보타락가(補陀落伽, Potalaka)산에서 유래하였다.  해안고절처 의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낙산사 역시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다. 이와 같은 입지적 특성으로 인해 낙산사는 해변과 절벽이 어우러진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백마고지 전적지</title>
								<link>/bbs/history/1260/364036/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2 13:57:37.0</pubDate>
								
									
										<author>조예원</author>
									
									
								
								
								<description>
								<![CDATA[
								백마고지 전적지는 강원도 철원 지역에 위치한 한국전쟁의 대표적인 격전지로 1952년 백마고지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특히, 백마고지는 철원 평야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요충지였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였다. 현재 백마고지 전적지는 전쟁 당시를 기리기 위한 기념 시설과 함께 조성되어 있으며, 전투에 참여했던 장병들의 희생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백마고지를 직접 보며 책이나 영상으로만 접했던 전쟁이 훨씬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노동당사</title>
								<link>/bbs/history/1260/364035/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2 13:13:49.0</pubDate>
								
									
										<author>양유빈</author>
									
									
								
								
								<description>
								<![CDATA[
								이 건물은 북한의 노동당사로 1946년 초에 북한정권하에서 착공하여 지상3층에 연건평 580평 규모의 건축물로 신축되었다.조적식 기둥 및 벽체로 수직재를 이루고 있으며, 보 및 스라브는 철근콘크리트 수평재로 수직재와 결구되는 구조로 되어있다.천장은 목조 삼각형지붕틀을 사용한 흔적이 있으며, 입구의 1층에 원기둥 두개를 세워 현관을 두었으며 그 위에는 아치로 장식하여 정면성을 부각하고 있다.이 건물은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북한이 공산독재정권 강화와 주민 통제를 목적으로 건립하고 한국전쟁 전까지 사용한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노동당사</title>
								<link>/bbs/history/1260/364033/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2 11:52:16.0</pubDate>
								
									
										<author>강현우</author>
									
									
								
								
								<description>
								<![CDATA[
								1946년 북한정권하에서 지역주민들의 강제 노력동원과 모금에 의해 지어진 건축물이다.당시 주민들은 성금 이란 명목으로 1개리마다 백미 200가마씩의 자금과 인력 또는 장비를 동원시켰으며, 그 해년 초에 착공하여 연건평 580평 규모로 완공 되었다.1947년 초부터 이 당사에서는 북한의 중앙당으로부터 지령되는 극비사업과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연천지역주민들의 동향사찰은 물론,대남공작을 주도한 북한정권하에서 중부지역의 주요업무를 관장했던 곳이다.이런 이유로 당사 내부구조물 축조작업에는 보안을 위하여 열성당원이외 일반인의 작업동원을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낙산사</title>
								<link>/bbs/history/1260/364032/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2 11:45:31.0</pubDate>
								
									
										<author>최승혁</author>
									
									
								
								
								<description>
								<![CDATA[
								 낙산 강원도 양양 오봉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입니다. 낙산사는 영동 지방의 빼어난 절경을 뜻하는 관동팔경 중 하나입니다. 671년 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하였으며, 이후 여러차례 중건, 복원과 화재를 반복하며 겪었습니다. 2005년 산불의 피해를 입어 여러 문화재가 훼손 됐지만,  화재 이후 낙산사는 몇 년에 걸쳐 복원 공사를 벌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사내에 칠층석탑 , 건칠관음보살좌상, 해수관음공중사리탑 및 사라장엄구 일괄 등의 문화재가 있습니다.낙산사를 처음 갔을때 의상대를 둘러싸고
								]]>
								</description>
							</item>
						
							<item>
								<title>장절공신숭겸장군묘역</title>
								<link>/bbs/history/1260/364031/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2 11:38:08.0</pubDate>
								
									
										<author>김현준</author>
									
									
								
								
								<description>
								<![CDATA[
								장절공신숭겸장군묘역은 고려의 개국공신 중 한명인 심숭겸의 묘역이다. 918년 홍유, 배현경, 복지겸과 함께 왕건을 추대,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는데 앞장섰다. 후백제의 왕, 견훤이 신라왕궁에 쳐들어가 경애왕을 살해하고 약탈하자, 왕건이 군사 5천을 거느리고 지금의 대구의 공산에서 견훤에 맞서 싸우다가, 후백제군에 의해 왕건이 위험에 처하자 왕건인척 대신하여 싸우다가 목이 베여 전사하였다. 신숭겸이자신을 대신하여 죽자, 왕건이 슬퍼하며 그 당시 왕건의 묘역 자리 후보였던, 풍수지리를 기반으로 잡은 명당자리 중 하나를 하사하였다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백마고지 전적지</title>
								<link>/bbs/history/1260/364030/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2 11:35:21.0</pubDate>
								
									
										<author>김예원</author>
									
									
								
								
								<description>
								<![CDATA[
								백마고지 전적지는 백마고지 전투가 실제로 벌어졌던 현장입니다. 이 전투는 한국전쟁 중 1952년 10월에 일어난 대표적인 고지전으로, 철원 평야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해 국군과 중공군이 치열하게 맞붙은 전투입니다.당시 이 고지는 중부 전선의 주도권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위치였기 때문에 약 10일 동안 10차례 이상 주인이 바뀌는 격전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집중적인 포격으로 산의 형태가 크게 훼손되었고, 그 모습이 마치 흰 말의 등처럼 보인다고 하여  백마고지 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결국 국군이 고지를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노동당사</title>
								<link>/bbs/history/1260/364008/artclView.do</link>
								<pubDate>2026-04-01 22:27:21.0</pubDate>
								
									
										<author>조현빈</author>
									
									
								
								
								<description>
								<![CDATA[
								철원 노동당사는 1946년에 북한 노동당이 철원과 그 인근 지역을 관장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지역 주민의 노동력과 자금을 강제로 동원하여 지었으며, 주민을 통제하고 사상운동을 억압하는 구실을 하였다. 이곳은 당시 철원의 중심지였는데 한국 전쟁으로 인해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이 노동당사는 지금까지 남아 분단과 전쟁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다.  노동당은 마을마다 쌀 200가마를 빼앗고 노동력과 장비를 강제로 동원하였는데, 건물 내부를 지을 때는 노동당원만 투입하여 비밀을 유지하였다. 이 건물을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
								]]>
								</description>
							</item>
						
							<item>
								<title>철원 노동당사 (충일장군)</title>
								<link>/bbs/history/1260/363987/artclView.do</link>
								<pubDate>2026-03-31 23:46:54.0</pubDate>
								
									
										<author>이충일</author>
									
									
								
								
								<description>
								<![CDATA[
								철원 노동당사(1946년 건립, 국가등록문화유산)철원 노동당사는 1946년에 북한 노동당이 철원과 그 인근 지역을 관리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지역 주민의 노동력과 자금을 강제로 동원하여 지었으며, 주민을 통제하고 사상운동을 억압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곳은 당시 철원의 중심지였는데, 6 25전쟁으로 인해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이 노동당사는 지금까지 남아 분단과 전쟁의 참상을 증언하며 안보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노동당은 마을마다 쌀 200가마를 빼앗고 노동력과 장비를 강제로 동원하였는데, 건물 내부를 지을 때는 노동당원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노동당사</title>
								<link>/bbs/history/1260/363973/artclView.do</link>
								<pubDate>2026-03-31 15:15:15.0</pubDate>
								
									
									
										<author>김요셉</author>
									
								
								
								<description>
								<![CDATA[
								철원 노동당사는 1946년에 북한 노동당이 철원과 그 인근 지역을 관장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지역 주민의 노동력과 자금을 강제로 동원하여 지었으며, 주민을 통제하고 사상운동을 억압하는 구실을 하였다. 이곳은 당시 철원의 중심지였는데 한국 전쟁으로 인해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이 노동당사는 지금까지 남아 분단과 전쟁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다.노동당사는 철근 구조에 벽돌과 시멘트로 벽을 쌓아 매우 견고하다. 건물을 앞에서 바라볼 때 좌우가 대칭되고 언덕 위에 지어진 덕분에 매우 권위적인 느낌을 준다. 비록 천장이 내려앉았지만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낙산사</title>
								<link>/bbs/history/1260/363970/artclView.do</link>
								<pubDate>2026-03-31 13:59:06.0</pubDate>
								
									
										<author>연최흠</author>
									
									
								
								
								<description>
								<![CDATA[
								 낙산사는 양양군에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 문무왕 때 승려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낙산은 범어로 보타락가의 준말로 관세음보살이 머무르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해변에 위치한 특이한 구조의 사찰이다. 몽고의 침입, 임진왜란, 한국전쟁(6.25전쟁), 산불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러 차례의 복원과 중건을 거치면서 현재의 낙산사가 만들어졌다. 낙산사는 1971년에 강원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가, 이후 해체되면서 2008년 사적 제495호로 승격되었다. 낙산사에는 많은 유물이 있는지만,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백마고지</title>
								<link>/bbs/history/1260/363954/artclView.do</link>
								<pubDate>2026-03-31 01:23:04.0</pubDate>
								
									
										<author>윤예빈</author>
									
									
								
								
								<description>
								<![CDATA[
								 철원은 화산암이 분출되어 이루어진 용암대지 철원 평야와 그 사이를 깊이 파고든 한탄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고장이지만, 아직도 중무장한 남북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군사작전 지역입니다. 백마고지 전적지는 백마고지 전투를 기리기 위한 장소입니다. 백마고지 전투는 1952년 해발 395m의 이름 없는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국군 제9사단과 중공군 제38군 3개 사단이 벌였던 전투를 말합니다. 그 당시 극심한 포격으로 고지 높이가 1미터는 낮아졌고 산등성이의 나무가 모두 쓰러져 허옇게 벗겨진 모습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백마가 누워 있는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도피안사</title>
								<link>/bbs/history/1260/363949/artclView.do</link>
								<pubDate>2026-03-30 20:19:47.0</pubDate>
								
									
										<author>황예슬</author>
									
									
								
								
								<description>
								<![CDATA[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화개산에 위치한 사찰인 도피안사는 865(경문왕 5)년 도선이 향도 약 1000여명과 함께 창건한 사찰입니다. 이 도피안사가 지어진 데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 사찰에 모셔진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본래 도선은 이 철조비로자나불상을 철원의 안양사에 봉안하려 하였으나, 운반 도중 불상이 사라져서 찾던 도중 이 도피안사의 자리에 불상이 안좌한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 일을 기점으로 도선은 이곳에 절을 창건하고 철조비로자나불상을 모시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후에 이 도피안사는 약한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백담사</title>
								<link>/bbs/history/1260/363948/artclView.do</link>
								<pubDate>2026-03-30 17:55:47.0</pubDate>
								
									
										<author>최윤호</author>
									
									
								
								
								<description>
								<![CDATA[
								백담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에 위치한 절로 한용운의  백담사 사적기 에 의하면 신라 진덕여왕 원년(647년)에 지장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한계사로 창건하고 이후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영취사로 불리다 1783년에 최붕과 운담이 백담사로 개칭한 후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백담사라는 이름은 전설에 따르면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이 100개 있는 지점에 사찰을 세운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백담사와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은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사이다. 1905년 입산수도한 후 깨달음을 얻어  조선불교유신
								]]>
								</description>
							</item>
						
							<item>
								<title>신장절공묘역 (申壯節公墓域)</title>
								<link>/bbs/history/1260/363945/artclView.do</link>
								<pubDate>2026-03-30 15:34:18.0</pubDate>
								
									
										<author>추태양</author>
									
									
								
								
								<description>
								<![CDATA[
								장절공 신숭겸 장군 묘역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1호 / 1976.06.17 지정) 신장절공묘역은 고려의 개국공신이자 평산 신씨의 시조인 장절공 신숭겸(申崇謙, ?~927) 장군의 묘역이다. 927년 대구 공산 전투에서 태조 왕건이 견훤의 후백제군에게 포위되어 위기에 처하자, 신숭겸은 왕의 옷을 대신 입고 전사함으로써 왕을 구출하였고 이 때 적군이 신숭겸을 태조로 오인하고 그의 목을 베어 갔다. 태조 왕건은 그의 죽음을 몹시 슬퍼하며 이곳 춘천 비룡동(방동리)에 예장(禮葬)(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고 묘를 조성)으로 묘를 조성하
								]]>
								</description>
							</item>
						
							<item>
								<title>양양 선림원지 석등</title>
								<link>/bbs/history/1260/363944/artclView.do</link>
								<pubDate>2026-03-30 15:19:05.0</pubDate>
								
									
										<author>강민지</author>
									
									
								
								
								<description>
								<![CDATA[
								선림원터 안의 서쪽 언덕 위에 놓여있는 돌로 만든 등이다. 선림원은 신라의 옛 절로, 이 곳에서 출토된 신라범종을 통해, 당시 해인사를 창건했던 순응법사(順應法師)에 의해 창건되었음이 밝혀졌다. 지금은 이 터가 경작지로 변하였으나, 여러 유물들이 남아있고 각종 기와와 토기조각들이 아직까지도 발견되고 있어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일반적으로 석등은 불을 켜두는 곳인 화사석(火舍石)이 중심이 되어 아래에는 이를 받치기 위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이 석등은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8각형식을 따르면서도 받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노동당사 </title>
								<link>/bbs/history/1260/363923/artclView.do</link>
								<pubDate>2026-03-30 13:58:52.0</pubDate>
								
									
										<author>김예준</author>
									
									
								
								
								<description>
								<![CDATA[
								이 건물은 북한 노동당사로 1946년 초 북한정권 아래에서 착공을 시작하여 지상3층에 연건평 580평 규모의 건축물로 만들어졌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북한이 공산독재정권 강화와 주민 통제를 목적으로 건립하고 한국전쟁 전까지 사용한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악명을 떨치던 곳이다. 북한은 건물을 건축 당시에 성금이란 구실로 1개리당 백미 200가마씩을 착취하였고 인력과 장비를 강제 동원하였다. 특히 건물 내부 작업 때는 비밀 유지를 위하여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쟁 당시에 건물 주변이 철원읍 시가지로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낙산사</title>
								<link>/bbs/history/1260/363910/artclView.do</link>
								<pubDate>2026-03-30 13:41:43.0</pubDate>
								
									
										<author>변정욱</author>
									
									
								
								
								<description>
								<![CDATA[
								강원도 양양군에 위치한 낙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신흥사의 말사로,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 도량 중 하나이다.낙산이라는 이름은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르는 곳을 의미하는 범어에서 유래했다.주요 유물로는 원통보전에 봉안된 건칠관음보살상이 있는데, 높이 112cm로, 겉면에 마른 옻칠을 한 불상이다.생각 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관람하고 산책하기 좋게 구성이 되어있어서 어렵거나 불편한 점은 없었습니다.좋은 날씨에 바다와 산의 조화가 잘 어울러진 낙산사에서 마음 편하게 잘 즐기고 온것 같아서 좋습니다.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백마고지 기념관</title>
								<link>/bbs/history/1260/363909/artclView.do</link>
								<pubDate>2026-03-30 13:29:27.0</pubDate>
								
									
										<author>김남현</author>
									
									
								
								
								<description>
								<![CDATA[
								백마고지 기념관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산명리에 6.25 전쟁중 최대 격전지였던 백마고지를 기념하기 위해 국방부에서 1990년 5월 3일에 기념관을 지었다.백마고지 전투는 1952년 10월 6일 부테 10월 15일 까지 한국군과 미군이 중공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이며,이 전투로 격렬한 포격으로 인해 산의 수목이 사라지고,능선이 깎여나가는 등 치열한 전투로 남게 되었다.백마고지 일대에서는 전쟁의 상흔을 기억하고 조성된 전적지가 자리하고 있고,위령비는 전투에서 산화한 영령들을 기르고, 기념관에서는 당시 백마고지 전투의 기록과 유물,그리고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낙산사</title>
								<link>/bbs/history/1260/363908/artclView.do</link>
								<pubDate>2026-03-30 13:29:04.0</pubDate>
								
									
										<author>김진호</author>
									
									
								
								
								<description>
								<![CDATA[
								낙산사는 강원도 양양군에 있는 절로,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인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라는 스님이 관음보살의 계시를 받아 세웠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곳입니다. 동해 바다와 맞닿아 있는 위치 덕분에 예로부터 관동팔경 중 하나로 꼽혔으며,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입니다. 2005년 대형 산불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타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후 복원을 거쳐 지금은 사적, 명승, 보물 등 여러 국가유산이 지정된 중요한 역사 유적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낙산사를 조사하면서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지켜져 온 이 사찰이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노동당사</title>
								<link>/bbs/history/1260/363895/artclView.do</link>
								<pubDate>2026-03-30 11:24:22.0</pubDate>
								
									
										<author>허장빈</author>
									
									
								
								
								<description>
								<![CDATA[
								1946년 공산치하에서 지역주민들의 강제 노동동원과 모금으로 완공된 3층의 건축물이며, 시대성을 잘 반영한 건물은 언덕을 이용한 기단의 설정과 대칭적 평면, 비례가 정돈되어 공산당사로서의 당시 권위가 표현되고 있다.일부 구조체의 철근 콘크리트의 사용과 화강석과 콘크리트, 벽돌 및 목재의 혼용을 통해 당시 건축 일면을 엿볼 수 있으며, 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증언하는 중요한 자료로, 현재 안보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공산 치하 5년 동안 북한은 이곳에서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대를 관장하며, 양민 수탈과 애국인사들을 체포, 고문,
								]]>
								</description>
							</item>
						
							<item>
								<title>진남관 </title>
								<link>/bbs/history/1260/360821/artclView.do</link>
								<pubDate>2025-11-03 11:57:39.0</pubDate>
								
									
										<author>한종민</author>
									
									
								
								
								<description>
								<![CDATA[
								여수 진남관은 1599년(선조 32) 전라좌수영 객사로 건립한 건물로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수군 중심기지로서의 역사성과 1718년(숙종 44) 전라좌수사 이제면(李濟冕)이 중창한 당시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으며, 건물규모가 정면 15칸, 측면 5칸, 건물면적 240평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대 규모이다.
								]]>
								</description>
							</item>
						
							<item>
								<title>선암사</title>
								<link>/bbs/history/1260/360787/artclView.do</link>
								<pubDate>2025-10-31 13:56:56.0</pubDate>
								
									
										<author>경나영</author>
									
									
								
								
								<description>
								<![CDATA[
								선암사는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에 자리한 사찰로,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에는 선종의 중심 사찰로 번성했으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주요 사찰 중 하나다. 산세와 계곡이 어우러진 조계산의 자연 경관 속에 조화롭게 자리해  자연 속의 사찰 로 불린다.사찰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목조건물로,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다. 지붕의 곡선과 공포(건물 지붕 받침 구조물)의 세밀한 조각은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다.사찰 입
								]]>
								</description>
							</item>
						
							<item>
								<title>국립나주박물관 나주 신촌리 금동관</title>
								<link>/bbs/history/1260/360785/artclView.do</link>
								<pubDate>2025-10-31 13:18:19.0</pubDate>
								
									
										<author>이민윤</author>
									
									
								
								
								<description>
								<![CDATA[
								나주 반남면 신촌리 9호 무덤에서 발견된 높이 25.5㎝의 금동관이다. 나주 신촌리 9호 무덤은 1917 1918년에 일본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이 금동관은 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외관과 내관으로 구성되어 있다.외관은 나뭇가지 모양의 장식 3개를 머리에 두른 띠 부분인 대륜에 꽂아 세웠으며, 내관은 반원형의 동판 2장을 맞붙여 만들었다. 기본 형태는 신라 금관과 같으나 머리 띠에 꽂은 장식이 신라 관의  山 자 모양이 아닌 복잡한 풀꽃 모양을 하고 있다, 백제의 관은 좌우 측판(側板)을 U자형 복륜(覆輪)이 감싸고 있는 형태
								]]>
								</description>
							</item>
						
							<item>
								<title>국립 나주 박물관 ( 나주 서성문 안석등)</title>
								<link>/bbs/history/1260/360729/artclView.do</link>
								<pubDate>2025-10-30 09:17:47.0</pubDate>
								
									
										<author>이서연</author>
									
									
								
								
								<description>
								<![CDATA[
								이 석등은 본래 전라남도 나주읍 서문안에 있던 것을 1929년 경복궁으로 옮겨놓았다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건되어 보관되어 왔다.  받침에 새겨져 있는 기록을 통해 고려 선종 10년(1093)에 석등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각 부분의 조각이 둔중한 편이나 지붕돌의 형태가 장식적인 공예기법을 보이고 있는 특이한 고려시대 작품으로, 통일신라시대 8각형 석등의 양식을 이어받으면서도 그 구조와 조각이 우수하다.
								]]>
								</description>
							</item>
						
							<item>
								<title>나주 덕산리 고분군</title>
								<link>/bbs/history/1260/360726/artclView.do</link>
								<pubDate>2025-10-29 22:06:03.0</pubDate>
								
									
										<author>김가을</author>
									
									
								
								
								<description>
								<![CDATA[
								나주 덕산리 고분군은 백제 시대의 독무덤으로 1917년부터 여러 차례 조사되었다. 주요 고분은 제1~5호분으로, 제3호분은 철제무기, 장신구, 금동장식금구편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제4호분은 토기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덕산리고분군은 일본 고분 형식의 원형으로 평가되며, 5세기 말 백제 시대 마한 세력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
								</description>
							</item>
						
							<item>
								<title>화엄사</title>
								<link>/bbs/history/1260/360695/artclView.do</link>
								<pubDate>2025-10-28 13:18:20.0</pubDate>
								
									
										<author>전상아</author>
									
									
								
								
								<description>
								<![CDATA[
								화엄사는 대한민국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삼국 시대에 창건되었으며, 지리산 국립공원 안에 있다. 544년에 인도에서 온 승려 연기가 창건한 것으로 화엄경의 두 글자를 따서 절 이름을 지었다.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장이 증축하여 석존사리탑 7층탑 석등 등을 건조하였다. 신라 문무왕대인 677년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각황전을 짓고 화엄경을 보관하였으며, 헌강왕 1년(875년)에 도선이 또 증축하였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피해를 입어 벽암선사가 7년, 인조 8년(1630년
								]]>
								</description>
							</item>
						
							<item>
								<title>순천왜성</title>
								<link>/bbs/history/1260/360693/artclView.do</link>
								<pubDate>2025-10-28 12:39:05.0</pubDate>
								
									
										<author>홍진오</author>
									
									
								
								
								<description>
								<![CDATA[
								순천왜성은 임진왜란 이후 여러번의 강화회담이 결렬된 끝에 발발한 정유재란 당시 왜군이 축성한 일본식 성입니다. 이 성은 1579년 음력 9월부터 12우러까지 고니시 유키나가를 중심으로 한 왜군이 약 2만명을 동원하여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 일대에 쌓았던 성입니다. 이 성이 축조되기 시작된 시기는 1597년 9월로 왜군이 경기도 부근에서 패한 뒤 전라도와 경상도 남해안 지역으로 남하였는데, 이때 각 지역 요충지에 성을 쌓았다. 특히 순천왜성은 전라도 지역의 군량미를 확보하고 전쟁 후 본국으로 철수할 발판을 마련하기 위함 이였습
								]]>
								</description>
							</item>
						
							<item>
								<title>순천왜성</title>
								<link>/bbs/history/1260/360685/artclView.do</link>
								<pubDate>2025-10-28 10:39:51.0</pubDate>
								
									
										<author>이정진</author>
									
									
								
								
								<description>
								<![CDATA[
								순천왜성은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쌓은 왜성이다. 전라도를 공략하기 위한 거점으로 동서 900m, 남북 850m 범위에 걸쳐 본성(本城)과 내 외성의 구조로 쌓았다. 내성과 외성 사이에는 해자를 설치하고 성벽 바깥으로는 목책을 둘러 요새화하였다. 정유재란 때인 1598년 9월 말부터 10월 초에 걸쳐 왜군과 조명연합군이 전투를 벌인 곳으로 울산왜성전투 사천왜성전투와 더불어 정유재란 3대 전투의 현장이다. 정유재란 때 축조한 왜성의 축조 기법 및 변화 양상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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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진남관</title>
								<link>/bbs/history/1260/360646/artclView.do</link>
								<pubDate>2025-10-26 22:59:53.0</pubDate>
								
									
										<author>이지흔</author>
									
									
								
								
								<description>
								<![CDATA[
								 1599년(선조 32)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린 진해루 터에 전라좌수사 이시언이 건립하였다. 1716년(숙종 42) 절도사 이여옥 때 큰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718년(숙종 44) 이제면 수사가 중창하였다. 1911년에는 여수공립보통학교로 사용하였고, 2001년 국보 제304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보로 재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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